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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칼럼

기도의 용사 Warrior In Pra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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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용사 Warrior In Prayer


기도는 내가 어떤 것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나의 능력은 본질적으로 없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위대한 기도는  자신의 흔적은 보이지 않고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흔적만 드러납니다.
기도하는 자신의 역사가 아니라  기도를 응답하시고 주장하시고 섭리하신 하나님께서 모든 환경을  주장하신 사실을 드러내는 것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많은 용사들은 한결  같이 기도의 용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삶에는 자신들이 용사가 아니라 주님께서 용사였습니다. 기도의 용사 중에 한 사람인 죠지물러라는 사람은 독일에서 세무서직원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열 살 때는 아버지가 열심히 모아놓은 돈을 훔쳐서 멋대로 써버렸습니다. 때로는 훔친 아버지 돈을 가지고 허랑방탕한 생활을 했습니다. 어느 날은 여관에서 잠을 자고 돈을 내지 않고 도망치다가 잡혀 교도소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이때가 겨우 16세였습니다. 주변에 알고 지낸 사람들은 인간쓰레기라고 말하면서 더 이상 쓸모없는 인간이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습니다.


그런 그가  우연한 기회에  모임에 갔는데  그곳이   기도하는 사람들이 모여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간절하면서도 진지하게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크나큰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그리고 죠지 뮬러는 하나님 앞에 회개의 눈물을 뜨겁게 흘리고 성령 안에서 완전히 돌아섰습니다.
전혀 다른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고 오직 주님만 신뢰하고 주님이 기뻐하는 삶을 사는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는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동안 사귀었던 애인이 죠지뮬러에게 내가 당신을 행복하게 해줄 테니 목사가 되지 말고 자신과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만들자고 하자 곧바로 헤어져버렸습니다. 아버지는"장남으로서 역할이 많은데 목사의 길을 가겠다면 생활비뿐만 아니라 학비까지도 주지 않겠다."고 갖은 협박을 했지만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그는 이런 환경을 통해 기도의 깊이를 더했습니다.  유명한  할례대학을 졸업하고 영국으로 건너가서  목사안수를 받고 얼마동안 현장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그 유명한 전염병인 콜레라가 휩쓸던 1834년에  영국 브리스톨에 고아원을  세웠습니다.
고아원을 시작할 때 접시 3개, 쟁반 28개, 물병 하나, 컵 한개, 칼 4개, 포크 4개, 채소 깍는 강판 한개가 전부였습니다. 훗날에는  2천명이 넘는 고아를 수용할 수 있는 고아원이 되었습니다. 그는(George Muller 1805-1898)  기도로  93세까지  15만 명의 고아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한 번도 이 많은 고아들을  먹여 살리는데 정부의 도움이나  어떤 부자들의 힘을 빌린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그의 고백 속에"기도하지 않는 것은 생명줄을 놓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한분만 믿고 기도했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사람의 칭찬이 아니라 하나님의 칭찬이며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의 책망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자신이 보이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만 보입니다. 자신이 가진 것도 보이지  않고 주님의 은혜만 보입니다. 참된 성찬과 세례는  나 자신이 죽고 주님만 보입니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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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문희경님의 댓글
죽은기도가 아닌 살아있는 기도하길 원합니다.
나에게 맞춰져있는 기도가 아닌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를 하는 심령이 되어지길 날마다 간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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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명숙이님의 댓글
기도가 뜨거워지고 살아있는 기도가
되기를 원하며 주님만 보여지는
진정한 기도의 사람이 되도록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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