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 너머에 있는 새 옷
요즘 고속도로가 많이 정체됩니다. 단풍 구경 가는 인파들이 타고 다니는 자동차들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산에 많이 갈 때가 있는데 봄에 진달래피고 파란 싹들이 올라올 때입니다. 그리고 단풍이 드는 가을입니다.
산의 변화입니다. 산이 옷을 바꿔 입었기 때문입니다. 봄에는 녹색 옷으로, 가을에는 단풍 옷으로 바꿔 입었거든요.
변화는 기대와 설렘을 줍니다.
변화 받는 것은 복중에 복입니다.
변화되지 않았다는 것은 심각한 질병에 걸렸거나 죽은 것입니다.
3살짜리는 그 나이에 맞는 성장의 변화가 있어야 하고 20살 짜리는 그 정도의 모습과 자태를 지녀야되고 50살은 외적성장은 없어도 내적성장과 성숙과 변화의 완성도는 거기에 걸맞게 갖고 있어야 합니다. 이런 성숙을 위한 변화가 멈춰있다면 인격과 삶에는 균형을 이루지 못함으로 생겨난 아픔으로 채워 질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적인 삶도 성숙을 통한 변화가 건강한 삶의 리트머스 시험지가 되듯이 영적인 삶에도 영적인 성숙을 통한 변화가 신앙생활의 표준이 됩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숙을 위한 도전을 계속하라고 강조합니다.
세례는 변화입니다. 더러움에서 정결함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죄로 인해서 더러워졌던 우리의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깨끗하게 씻김 받는 것입니다. 물로, 비누로, 때 수건으로도 비비고 닦아도 지워낼 수 없는 우리의 죄악들을 정결케 하시기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셔야 했습니다. 누구나 죄를 지으면 그 죄의 값을 치러야 합니다. 죄라는 것 자체는 결과적으로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죄를 지으면 그 죄의 값으로 지옥에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죄의 값을 치룰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죄의 값을 치르려면 죄 없는 사람이 대신해주어야 하는데 인간은 죄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 밖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 의인이 없어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인간의 육신을 입고 오시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 의인이신 예수님이 죄인인 우리를 대신해서 죄의 값을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계산하신 것입니다. 그로인해 우리는 원죄에서 자유 함을 얻을 수 있게 되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세례는 옷을 갈아입듯이 옷을 갈아입는 것입니다. 그것은 소속을 의미합니다. 학교마다 학교에 맞는 교복을 입은 것은 소속을 말합니다. 그 학교는 그 학교 교복을 입어 소속을 같이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비록 몸은 세상에 살아도 영혼과 삶의 가치는 소속이 다르기 때문에 그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어야 됨을 성경은 강조하십니다.
진정으로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옷을 입습니다.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거듭나서 그리스도로 새사람을 입는 것이 세례입니다. 이 옷은 절대로 유행에 뒤지지 않고 유행을 따라가지도 않고 유행을 넘어 앞서가는 옷입니다. 이 옷은 천년이 지나도 바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날마다 입어보지 못한 새로움이 있는 새 옷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이 옷을 입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