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찾습니다.
어떤 사람은 천사 같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어떤 사람은 악마 같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장소에 따라서 다르게 불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직장에서는 천사라고 찬사를 듣지만 가정에서는 악마라고 부릅니다. 친구들 속에서는 멋쟁이지만 집에서는 괴물로 여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같은 사람이 이렇게 불리는 것은 모순입니다.
천사는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어디서든 천사입니다. 설탕을 물에 넣든, 그릇에 넣어두었던, 봉지에 두었던 어두운 곳에 있든, 밝은 곳에 있든 단맛을 지닌 채 있듯이 달콤한 사람은 장소에 상관없이 달콤한 맛을 지니고 있습니다.
설탕은 오래 놓아두면 맛이 변하고 변질이 되지만 소금은 오래 도록 놓아두면 더 깊은 맛을 냅니다.
세상의 어떤 맛도 소금을 따라잡을 것은 없습니다.
소금을 만나면 아름답게 변화됩니다. 소금을 만나면 순수해집니다. 소금이 들어가면 겸손해집니다. 소금과 하나되면 변질 될 것도 멋진 변화를 가져옵니다.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중세시대에 규모가 꽤나 큰 수도원이 있었습니다. 수도원 원장은 많은 수도원생들 중에 어떤 수도원 생에게만 관심과 사랑을 집중했습니다. 그러자 많은 수도원 생들이 그 수도원생을 시기하고 질투하며 미워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수도원 원장이 모두를 모아놓고 새 한 마리씩을 나눠주면서 누구도 보지 않는 곳에 가서 살짝 죽여서 오라고 했습니다. 모두들 원장님 말씀 따라 금방 죽여서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유독 한 사람 즉 원장님의 사랑을 독차지 한 사람만 죽이지 않고 산채로 가져왔습니다. 이 사람이 불순종하고 그냥 온 것을 보고 모두들 얼굴에 기쁨이 서려 있었습니다. "드디어 원장님한테 제대로 혼나겠구나!"라고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고소한 맛을 느꼈습니다. 원장님이"왜 죽이지 않고 그냥 왔느냐?"고 그에게 물었습니다. "예, 제가 아무도 안 보이는 곳을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가는 곳마다 하나님이 보고 계시더라고요 저는 하나님 안 보이는 곳을 찾지 못해서 못 죽였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오히려 원장님은 이 사람을 전보다 더욱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소금 같은 성도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님을 의식하고 살아갑니다.
소금은 마지막까지도 똑같은 맛을 지닙니다. 소금은 극히 적은 양이라도 똑같은 맛을 냅니다. 소금가마니 속에 있어도, 낱개로 있어도 맛은 같습니다. 소금을 뜨거운 물에 넣어도 찬물에 넣어도 맛은 변하지 않습니다. 소금같은 신앙, 소금 같은 삶, 소금 같은 인생처럼 아름다운 인생이 있을까요? 출세하겠다는 욕심에 범벅이가 되고 더 많이 소유하고 싶어 하는 탐욕에 물들어 썩어져 가고 있는 이 시대에 소금 같은 성도가 없으면 누가 썩음을 멈추게 할 수 있습니까?
주님은 찾습니다. 소금과 빛의 성도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