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임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으로
To Jerusalem, where you're waiting to be killed
예수님이 벳바게에서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많은 사람들이 종려나무가지를 바닥에 깔고 흔들면서 환영한 것을 기념하며 종려주일로 지킵니다.
옛날에는 그 나라 왕이 입성할 때 나귀를 타다 세월이 흐르자 백마나 황금마차를 타고 수많은 군중들의 환호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다시 예수님 그 전의 시대의 나귀를 타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만왕의 왕으로서 말은커녕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이 가난했기 때문에 빌려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것이었습니다. 구약 스가랴 선지자가 메시아의 오심에 대한 예언 가운데 당신의 백성에게 평강을 주시기 위해 세상에 오신 만왕의 왕은 백마타고 오시는 것이 아니라 나귀새끼를 타시고 입성하신다고 예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것은 스가랴의 예언을 이루시기 위해서 나귀새끼를 타신 것이며 겸손하신 왕으로 입성을 하시는 것을 만방에 드러내신 것입니다.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어떤 대단한 위엄은 보이지 않고 오히려 초라하게 보였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끝까지 나귀새끼를 타신 것은 예수님은 백성들의 평화를 위해 겸손한 왕으로 입성하시고 예언대로 채찍 맞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예언과 약속을 이루신 것입니다.
아마도 예수님이 화려한 백말을 타시고 대단한 호위병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다면 주둔하고 있던 로마군인들과 전쟁이 발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봐도 초라하기 끝이 없는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시는 모습은 로마군인들의 관심을 끌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참왕이시며 왕중의왕이심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왕들과는 달리 겸손하신 왕이시며, 평화의 왕으로 입성하신 것입니다.
예루살렘이라는 말은 '샬롬' 즉 평화라는 뜻이지만 실상 예루살렘에는 진정한 평화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평화를 갈망하고 있었으나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종교적으로도 진정한 평화를 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겸손한 왕이요, 평화의 왕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평화가 없는 예루살렘에 들어가셔서 불의한 자들의 모함과 불공평한 재판을 받으시면서도 마치 제물로 드려지는 어린양처럼 묵묵히 십자가 제단의 제물이 되어 참된 자유와 평화를 이루어놓으신 것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인 것입니다.
참된 평화와 예수님이 나귀새끼를 타시고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에루살렘으로 들어가고 계신지를 모르는 사람들은 에수님을 정치적인 왕으로 오해하고 왕의 입성을 환영하듯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죄로 묶여지고 평화를 누리지 못한 나를 대신해서 좌값을 치뤄주시려고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성으로 들어가고 있음을 깊이 알아가는 종려주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