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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칼럼

경건은 삶의 신앙고백이다 Pity is a confession of faith in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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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은 삶의 신앙고백이다
Pity is a confession of faith in life

경건은  주님의 마음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마음이 없으면 형식이 되고 맙니다.
 원가를 뛰어나게 잘하면  빠르게 잘 드러납니다. 그로인해 명성도 얻고 인기도 얻습니다.
그럴 때에  드러난 부분이  마치 그 사람의  전부인  것처럼 여겨지고 보여집니다. 신앙생활도 별로 차이가 없습니다.  찬양을 잘하면  그 사람의 찬양이 드러나게 되고 더 노력하면 더 좋은 결과가 나옵니다.  그 결과에  자기자신과 주변  사람들은 더 관심을 기울입니다.
드러난 부분에 대한 관심은 그  사람에 대한 전부로 인식되어지고, 그렇게 상대에 대한  인식이 굳어져 있는데  그 상대가  실망거리를 주면  비판하고 조롱합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이  드러나는 것도  관심을 갖을 수 있지만  자신이  주변에 드러나게 되는  그 달란트 넘어 자신의 내적인 모습이 어떠한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나타난 화려한 달란트에  걸맞는 인격이나 소양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인격과 소양이 텅빈 상태에서 뛰어난  달란트들은 
언젠가 비참하게 조롱당하게하거나 추락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신앙인이나 일반사람들이나  겉으로 드러난  것 내면에  사랑이 없으면  음정과 박자 등을 사람보다 더 정교하게  부르는   AI(에이아이)첨단미인로봇이 훨씬 뛰어나고 편합니다.
사람이 사람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안에  인격과 소양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믿는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것이 경건입니다.
많은 신앙인들이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실제적으로는 경건의 내용이 없다고  성경은 강조합니다. 그래서 경건은  사랑을 요구합니다. 사랑이 없는 경건은  소리만 요란한 꽹과리와 같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믿는 자들에게  경건의 능력을  소유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경건의 능력이라는 것은  겉으로 드러난  것들의 출처가   자기 안에 꽉차있는 사랑의  주머니에서  출발할 때 배양이 됩니다. 유대인들은 대부분  율법을 사랑으로 해석하고 접근함 없이  율법을 율법으로만  대하다가   유대인들은 형식과 전통과 관습에 매이게 된 것입니다. 
경건의 능력으로 살기위해서는  사랑으로  율법을  해석해야  심령의 눈이 열려서 보고 듣고 깨닫게 됩니다.  참된 경건으로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 자체가  멋진 신앙고백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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