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칼럼
불만족은 수갑보다 더 옥죄고 만족은 자유보다 더 자유롭게 한다
눈에 보이는 것이나 귀에 들리는 것이나 입으로 들어가는 것 등은 참으로 만족하기가 어렵습니다.
여기서 만족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시겠습니까?
우리는 그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좀더 크고 화려하고 많기를 원할 것이고 귀에 들리는 것은 짜증나게 하는 소리보다는
달콤하고 칭찬이나 해주는 말을 듣고 쉽고, 입에서는 입안에서 스르르 녹아내리는 부드러운 것이나 맛있는 고기로
채워지기를 원하는데 어떻게 쉽게 만족할 수 있겠습니까?
누구든지 눈에서는 좀더 좋고, 많고, 크고, 넓고, 마음에 드는 것을 가지라고 요구할 것인데 어떻게 “이제 됐어”라고
제어할 수 있습니까? 참 어렵습니다. 그러나 눈이나 귀나 입을 충족시킨다고 만족은 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에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더라도 바다를 채울 수 없는 것처럼 우리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결코 차고 넘치지 않습니다. 방 한 칸이라도 장만했으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말해놓고도 친구 집에 방문했다가 30평 넘는 집을 보면 눈에서 지워지지 않는 것이 우리의 마음입니다.
욕심을 가진다는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닙니다. 어떤 종류의 욕심을 가지냐에 따라 다릅니다. 의로운 것을 위한
욕심은 도전을 주어서 발전을 가져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일화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정원사의 집에서 적은 먹을 것을 가지고 일은 많이 하던 나귀가 쥬피터에게 찾아가서 이집에서 다른 집으로 가게 해달라고 소원을 말했더니 쥬피터는 나귀의 불만에 기분이 나빠서 도자기를 만드는 집으로 보냈습니다. 이 집에서 전보다 더
심한 무게의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쥬피터에게 부탁을 했더니 이 번에는 가죽을 만드는 입으로 가게 해주었습니다. 이 나귀는 이 주인의 하는 일을 보고 . “오, 나는 참으로 비참한 존재구나! 이번 주인은
나를 심하게 부려먹은 후에 가죽을 벗기고 나를 잡아먹을 것이 분명한데 이럴 줄 알았다면 차라리 먼저 번 집에 만족하며 있었을 것인데”하고 신음소리를 내며 울었습니다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지 않으면 다른 환경에서도 만족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며 감사하고 기뻐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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