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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칼럼

보이지 않는 거름이 꽃을 화려하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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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거름이 꽃을 화려하게 해줍니다.

오늘 날 복음의 혜택을 입도록 해준 많은 선교사들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토마스 선교사는 이 땅을 복음화하기 위해서 젊음을 바친 첫 순교자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훨씬 전에 1832년도에 귀출라프가 서해안 도서지방에 왔었습니다. 그후 30년 넘게 선교사들이 오지 않다가 영국 목사인 토마스가 1865년에 왔습니다.
그는 런던 대학을 나와 아주 젊은 나이인 23살에 자기 아내와 함께 중국선교사로 왔다가 아내가 죽자 한동안 방황을 하다가 중국세관에서 통역연수관을 했습니다.

이때에 한국인 두사람을 만나 한국말을 배우면서 한국에 대한 선교비젼을 갖게 됩니다. 몇년 후 1865년 9월 한 달만에 황해도에 있는 자라도에 도착하여 성경과 전도지를 나누어주었습니다.
계속해서 백령도 주변지역을 전도하다가 한강을 타고 올라가 대원군에게 까지 전도하려다가 폭풍을 만나 중국으로 되돌아갔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았고 이 땅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상선인 제너럴셔만호를 타고 대동강을 타고 내륙으로 올라왔습니다.
이때에 제너럴 셔먼 호는 평양감사 박규수에 의해 불타버렸고 토마스 선교사는 1866년 9월 2일 27세 젊은 나이 대동강 나루터 모래언덕에서 박춘권에게 참수형을 당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지 2년 6개월만에 토마스선교사도 이 땅의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결단코 그의 피는 헛되지 않았습니다.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가장 든든한 기초가 된다." 는 터툴리안의 말대로 그의 순교의 피는 한국교회의 꽃을 피게 하는 거름이 되었습니다.
토마스로 부터 성경을 받은 박춘권은 나중에 변화되어 장로가 되었고,
당시 구경나왔던 12세 소년 하나는 토마스 목사가 던져 준 성경 세 권을 주워 갖고 있었는데, 몰래 숨겨 갖고 있다가 그 중 한 권을 박영식이라는 지방 관리에게 주었는데, 박영식은 성경을 다 뜯어서 방에 벽지로 발라놓았다가 그의 조카가 그의 집에 놀러왔다가 벽에 바른 성경을 읽고 감동을 받아 예수를 믿었습니다.
나중에는 그의 조카가 평양 숭실전문을 졸업하고 미국 선교사의 도우미로 봉사하다가 한국인 성서 번역위원의 한 사람으로 성경번역에 큰 공헌을 세웠습니다.
박영식이란 사람의 집은 훗날에 교회가 되어 평양 부흥 운동을 일으키는 원동력을 주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토마스선교사가 순교한지 16년이 지나면서 한국의 쇄국정책은 끝나게 되었고 3년후에는 언더우드, 아펜셀러 선교사가 우리나라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의 피가 흐른 대동강 끼고 있는 평양은 1907년 대 부흥 운동이 일어나는 기폭제가 되었고 제 2의 예루살렘이라고 부르기까지 할정도로 성령의 역사가 넘쳤습니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복음의 혜택은 예수님이후로 수많은 밑거름들을 통해서 이뤄진 것들입니다. 우리는 사랑의 복음에 대한 빚진 자인 것은 틀립없습니다.
오늘 우리교회가 있기까지 늘 눈물의 기도와 열정의 땀을 쏟아 붓는 충성스런 성도들의 거름으로 인해서 우리는 많은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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