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칼럼
남기고 싶어서 이렇게 살고 있지만
어떤 사람은 인생을 살면서 적자를 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흑자를 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새로운 한해를 시작하면서 내게 주어진 한번밖에 살수 없는 내 인생에서 남길 것이 뭐가 있는가를 생각해봐야 멋진 삶이 될 것입니다. 많은 것을 남기기 위하여 투자했는데 사실 건진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로는 사람에게, 사업에, 여러 가지 일들에 그러나 먼발치에서 보면 참으로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사업도 남겨야 하듯이 인생도 남겨야 한다는 사실은 간과할 수는 없는 중요한 우리들의 좌표인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인생과 사업의 차이점이 있는데 사업은 일년 1월 1일에서 12월 31일까지 일정을 확정 받고
하지만 인생은 3개월 아니면 어떤 사람에게는 6개월 만에 너의 인생을 결산을 하라고 명령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적자를 봐서는 안 되겠다는 사실입니다. 남는 흑자 인생길을 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특별히 올 한 해 동안 남기면서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님께서 알려주시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얻기 위해서는 베풀고 나누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건강해도 돈이 많아 사업이 잘되어도 때가 되면 기울 때가옵니다. 몇 년 전에 어떤 사업가가 300억원을 사회에 기부를 했습니다. 그래서 그 교회 담임목사님이“ 어떻게 그렇게 큰돈을 기부했느냐”고 여쭤봤더니 “그저 저는 설교 들은 대로 했을 뿐입니다. 내 인생에서 이 사업을 통해서 남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나마 사업이 잘 될 때에 베풀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진정으로 베푸는 자들은 주는 것은 받을 것을 기대조차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는 것은 내손을 떠나면서 이미 내 것이 아니고 내소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베풀자고 하면 우선 돈부터 떠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돈은 최종단계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많은 것을 남기는 인생을 살려면 무엇을 주어야 하겠습니까?
무엇보다 마음을 주어야 합니다. 희망의 마음을, 격려의 마음을, 도전의 마음을, 그리스도의 마음을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보이지 않은 것을 주어야 합니다. 열정 (사랑의 땀)을, 눈높이의 사랑을, 섬김을 주어야겠지요.
마지막으로 주는 것이 보이는 것입니다.
물질로 쓰기 나름입니다. 노벨은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일간지 신문에서 형 루드빌하가 죽자 잘못알고 노벨이 죽은 것으로 알고서 신문에 ’피로 거부가 된 노벨이 죽다‘라는 기사를 난 신문을 읽고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 싶어 다이나마이트로 번 돈을 1888년에 다 내 놓고 ’노벨 상‘을 제정해서 그의 이름이 명예롭게 되었다는 것은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사실 주는 것이 남는 것입니다. 주는 것은 큰 것을 주는 것으로 잘 못 알 때가 있습니다. 주는 것이란 의미는 큰 것 작은 것의 의미가 아닙니다. 주는 것이란 의미는 내 몫을 포기한다는 의미입니다. 만약에 큰 것과 작은 것의 의미로 준다면 아마 큰 것을 줄 때면 거드름을 피울지 모르겠습니다. 작은 것을 줄 때는 작아질 것입니다.
이것은 이중적인 자아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주는 것은 그저 내 몫의 일부분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내 몫을 포기하는 것은 심는 것이요 심어야 내 몫으로 올 것 아닙니까? 마음도, 물질도, 소망도 마찬가지입니다.
올 한해를 많은 것을 남기는 한해가 되길 바랍니다. 참 소유와 남는 것은 주는 것이요 나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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