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칼럼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
많은 사람들은 상대방을 나와 비교하면서 나보다 뭔가 나은 부분이 많으면
슬퍼하고, 나보다 못한 부분이 많으면 우쭐하면서 기뻐합니다.
참으로 부러운 것도 있겠지요.
그러나 제일 부러운 것은 아마도 소망을 가지고 희망차게 사는 사람일 것입니다.
저 사람은 저런 형편에 무슨 재미로 살까? 하지만 상대방 마음속에 삶의 희열을
가지고 사는 모습을 보면 이내 그 모습 앞에 주눅이 들고 말 것입니다.
“왜, 나는 저런 행복을 가지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라는 심적인 부담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기다릴 것이 있는 사람은 소망이 근거가 되어 희망이 넘쳐 살 수 있습니다.
시골에서 어렵게 살던 농부의 둘째 아들이 아버지가 10년 넘게 모아가면서
소 다섯 마리를 키워서 논을 사려고 팔아서 그 돈을 장롱에 넣어 보관을 하고
있었는데. 이 아들이 그만 그 돈을 훔쳐서 서울로 도망을 가버렸습니다.
7년이 지나도 명절에 나타나지 않자 아버지는 다 용서했으니 아무 상관 말고
집으로 돌아오라고 고향을 찾아온 둘째 아들 친구들에게 전해주었건만 연락은 여전히 없었습니다.
2년 후에 아들친구로부터 “아버지기 나를 용서하셨다면 집 앞에 있는 대추나무에 하얀
수건을 걸어놓으십시오.“라고 전해왔다. 이 때부터 아버지는 매일처럼 하얀 수건을 매달아
놓고, 혹시 바람 부는 날이면 날아 갈까봐 묶어놓았습니다.
다시 2년 후에 아들은 용기를 내어 고향 가는 열차를 탔습니다. 행여 수건이 놓여 있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면서 집 앞을 지나쳐 갔습니다. 열차 안에서 집 쪽을 보니 대추나무가
온통 하얗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혹시 아들이 보지 못할 까봐
집에 있는 홑이불까지 갖다가 내걸었던 것입니다. 이 아들이 이 모습을 보고 용기를
얻어 집으로 들어가 아버지와 포웅을 11년 만에 했습니다. “아들아!, 다시 시작하자
우리는 네가 돌아왔으니 희망이 있다“라고 하면서 소망으로 가슴을 가득 채웠습니다.
이처럼 기다리는 존재가 돌아올 때에 소망이 넘치고, 삶의 여러 가지 환경에서 묶였던
데서 놓임을 받을 때에 희망이 넘치게 됩니다.
또한 남이 부럽도록 소망을 키울 수 있는 것은 삶 속에서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믿는 자는 믿음의 씨앗을 뿌리면 반드시 믿음을 통한 풍성한 소망의 열매들을 거두게 됩니다.
시편 126편 6절에 “눈물로 씨를 뿌리면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러워하며 사는 자가 아니라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것은 소망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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