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칼럼
마음이란 친구는..
마음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로 쓰여집니다..
왜냐구요? 이 마음 저 마음..등.. 단수가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 그래서 정한 마음을 달라고..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향한 한 마음..그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마음은 영적으로 볼 때 내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 마음은 나에게 달라 붙어
자꾸만 하소연해서 영적인 것을 이루지 못하게 합니다..
결국 마음에게 그 마음이 원하는 것들을 허락하는 순간 부터
그 마음은..나를 주인인 것 처럼 이끌고 다닙니다...
예) 아이가 자꾸 조르면서 과자를 사달라고 하니
엄마가 알았어..란 말만 하면..그때부터 상황은 역전 되어
그 아이의 손에 끌려 가게로 가는 엄마를 생각해 보면 압니다..
그 마음..처음에는 아주 조그맣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이 허락을 받는 순간 부터는 내 육신을..그것보다 훨씬 큰
내 육신을 주장합니다.. 이끌고 막 끌고 다닙니다..
예) 삼손도 그 육신이나 힘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나 그 마음..드릴라에게 주자..그 마음이 삼손을 주장하여
하나님의 원하지 않는 모습으로 사는 자가 되었습니다..
예) 가을에 사람들이 단풍 놀이를 갔다 왔다는 소리가 들려오면
이곳 저곳에서.. 방송에서 막 부축이면... 그 마음이 내 안에서 점점 부풀어
오릅니다.....콩당 콩당하게 만듭니다... 조급하게 만듭니다...끓어 오릅니다..
결국 그 마음의 소리에 져 버려..허락한 육신이 단풍 놀이를 갑니다...
그러나 결국 밀린 숙제..밀린 일들.. 갚아야 하는 돈..다 내가 해야 합니다..
마음이 하지 않습니다... 결국 그 마음에 끌려 감으로 인해
내게 더 어려움이 왔을 뿐입니다.. 그 마음의 기쁨은 아주 잠깐일뿐이였습니다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는 말씀은
그 마음의 소리에 알았다..허락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곤고한 일만 있을 뿐만 아니라
육신의 근심(걱정 염려 불안..)만 생기기 때문입니다..
이제 내 마음을 지키라..하신 말씀을 온전히 깨달아
마음 따라 이리 저리 끌려 다니는 자가 아니라
마음을 오히려 말씀으로 지키는 자들이 되길 기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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