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칼럼
예수 믿는 사람의 멋은 이런데에 있습니다.
87세가 되신 박씨 어르신과 최씨 어르신이 마을 입구 정각에 앉아 늘 얘기를 나누면서 웃습니다. 때로는 두 노인들이 상대방의 눈꼽을 가제 손수건으로 닦아주는 모습은 마치 젖먹이 아기를 닦아주는 엄마의 사랑과 정겨움으로 다가왔습니다. 언젠가 최씨 어르신이 백내장으로 앞이 잘 보이지 않자 외부출입이 불편하게 되었고 함께 지내던 박씨 어르신은 짝잃은 외기러기처럼 풀이죽었습니다. 매일처럼 앞이 보이지 않는 최씨 어르신을 찾아 얘기친구가 되어주고 이것저것 챙겨주었습니다. 그러나 백내장 수술을 더 늦추면 완전히 실명한다는 말을 듣고 박씨 노인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고추농사를 해서 만들었던 13만원을 할머니모르게 싸들고 나가서 병원을 찾았습니다. 병원에서는 늦었지만 잘하면 볼 수 있다는 말에 힘을 내어 실명직전에 있는 최씨 노인의 손을 붙잡고 시외버스를 타고 대도시에 있는 대학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선명하게는 보이지 않지만 물체의 윤곽을 얻을 정도가 되어 퇴원했습니다. 그들은 상대를 자신의 분신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중학교 때에 봤던 두분의 모습은 어쩌다 고등학교다니다 방학해서 고향에 갔었을 때도 여전히 여름철에 볼 수 있었던 모습이었습니다. 박씨 어르신과 최씨 어르신은 우리 동네에서 태어나서 그곳에서 줄곳 함께 교회출석하며 농사일을 하시면서 살아오신 전형적인 농부이었습니다.
여름 밤 더울 때면 정각에 나가면 그 분들의 정겨운 대화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어졌습니다.
참으로 멋있어보였습니다. 그 연세들인데도 서로 격려하고 배려하는 모습은 부러웠습니다.그 연세는 지게질을 하는 것도 버거울텐데 어쩌다 아낙네들이 머리에 뭔가 이고 가면 "어이 그것 지게로 갔다줄께"하시면서 자기 지게에 얹어놓은 여유와 인정미는 참으로 마음을 훈훈하게 했습니다.
이제 새벽공기가 산뜻해지니 언뜻 고향의 공기가 생각나면서 두 어르신네들의 아름다운 교제와 멋진 삶이 머리 속에 그려집니다. 이분들이 지금도 그자리에 계신다면 얼마나 멋질까?
바로 이런 모습이 우리 삶의 아름다움인데 마음으로만 그려봐야 된다는 것이 너무 아쉬운세대입니다. 지금 우리가 앉아있는 자리는 내 자신 때문에 아름답습니까? 지나가는 사람들이 볼 때에 아니 마을 사람들이 볼 때에 멋집니까? 조금은 부끄럽지는 않습니까? 지금 내가 앉아 있는 교회 자리는 아름답습니까? 남을 비하하기보다 남들의 아픔을 놓고 숨죽여 진정을 다하는 기도의 자리입니까?
세상의 상전대접 받듯 교만의 태도로 인정받기만을 바라는 자세에서 섬김과 겸손으로 무장된 사명의 자리입니까? 내일 부터는 한 주간 삶의 아름다운 자리를 만들기위한 기도회를 시작합니다. 아직 부족하지만 주님을 의지하고 도전하는 창조적인 마음들이 고상한 가치를 더하게 해줍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성령님의 통치는 내 삶을 변화시키십니다.
예수쟁의 멋은 이런데에 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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